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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재를 만나다 - 조선시대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과 그를 기리기 위한 재실 모명재, 한국의 역사가 된 400년전 역사 속 두사충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모명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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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이야기

오빠와 누이가 아웅다웅 만든 봉우리 형제봉

옛날 옛적에 어머니와 힘이 센 남매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 남매는 힘이 어찌나 센지 온 나라에서 이들을 이겨낼 장사가 없었어요. 어느 날, 남매가 서로 자기 힘이 세다며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보다 더 힘이 세!”
“아냐, 오빠보다 내가 더 힘이 세!”
오빠가 누이에게 말했어요.
“그렇다면 누가 힘이 센지 우리 내기를 하자.”
“무슨 내기?”
“산 쌓기 내기! 높은 산을 쌓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
“산 하나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지. 좋아, 바로 시작해.”
누이가 자신있게 대답했지요.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오빠는 저고리로, 누이는 치마폭으로 흙을 나르며 산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오빠는 누이가 쌓은 산을 ‘힐끔’ 보았어요. 그러나 이게 왠일일까요? 동생이 쌓은 산이 훨씬 높은 게 아니겠어요. 당연히 치마폭으로 흙을 나른 누이의 봉우리가 더 높을 수밖에 없었지요. 이에 심술이 난 오빠는 여동생이 쌓은 봉우리를 밟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으앙~”
동생의 울음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습니다.
“두 아이의 힘은 천하에서 가장 세지만 덕은 가장 부족하구나. 다 나의 탓이다.”
힘을 자랑하며 티격태격 다투는 남매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오늘날 오빠가 쌓은 높은 봉우리가 형봉(兄峰), 밟힌 것 마냥 뭉뚝한 봉우리가 제봉(弟峰)이 되었고, 형봉과 제봉을 가장 낮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봉우리는 모봉(母峰)이 되었습니다. 한편 속상한 어머니는 집을 떠나 고개를 넘었는데, 남매 걱정에 얼마 가지 않아 집을 향해 돌아보았다하여 그 고개를 ‘돌아볼 고(顧)’, ‘어미 모(母)’자를 써서 고모령(顧母嶺)이라고 부른답니다.

  • 담당부서관광과
  • 담당자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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