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Script 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콘텐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명재를 만나다 - 조선시대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과 그를 기리기 위한 재실 모명재, 한국의 역사가 된 400년전 역사 속 두사충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모명재이야기

  • 글씨크기확대
  • 글자크기기본
  • 글씨크기축소
  • 인쇄
조상을
빛내는 효

조상을 빛내는 효

어느 추운 겨울날,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 몸져누운 어머니를 간호하는데 여념이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갑자기 송이버섯죽이 먹고 싶다고 하시는 거예요. 엄동설한에 어디 가서 송이버섯을 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아들은 차마 어머니께 버섯이 없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마을 뒷산에 올랐습니다. 나무 밑을 샅샅이 뒤져가며 버섯을 찾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산을 헤맸을까. 아들의 정성에 감복하여 하늘이 선물을 내렸는지, 눈 덮인 큰 소나무 밑에서 버섯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버섯을 품안에 넣고 한 걸음에 달려가 어머니께 버섯죽을 끓여드렸어요. 그토록 먹고 싶어 하시던 버섯죽을 드신 후, 어머니가 점차 원기를 회복하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이 아름다운 효행 이야기는 바로 두사충의 7대손인 두한필(杜漢弼,1823~1893)의 이야기입니다.

모명재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담한 효자각이 바로 ‘명정각(命旌閣)’으로 두한필의 효행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조정에서 내린 ‘정려(旌閭, 충신·효자·열녀 등이 사는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입니다. 두한필이 세상을 떠난 후, 조정에서는 이 같은 정려와 함께 종3품(從三品)에 해당하는 ‘통훈대부 규장각직각(通訓大夫 奎章閣直閣)’이란 벼슬을 증직(贈職, 충신·효자·학식이 높은 사람 등에게 죽은 뒤에 품계, 관명 등을 높여주는 일)하고 그의 효행을 기렸습니다.

현재 명정각은 1912년 두사충의 재실인 모명재를 지을 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1966년에 보수하였으며, 정려각 안에는 정려비와 작은 편액 5개가 걸려 있습니다.
비록 작은 정려각만이 그의 효행을 전하고 있지만 두한필은 두사충의 자랑스런 후손이며 아름다운 한국인으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담당부서관광과
  • 담당자박현정
  • 연락처053-666-4921
페이지 만족도 조사
서비스향상을 위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페이지 내용에 대한 만족도와 의견을 남겨주세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