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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명재를 만나다 - 조선시대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과 그를 기리기 위한 재실 모명재, 한국의 역사가 된 400년전 역사 속 두사충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모명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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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말 새단장을 마친 모명재 소식을 수성구 블로그를 통해 듣고 방문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역사적인 문화재로서 모명재가 가지는 가치는 남다르다고 하겠는데요. 수성구에서 얼마전 이 곳을 새단장했다고 합니다.
그럼 모명재를 둘러볼까요?

모명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남부정류장 뒤편! 수성구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위치를 짐작하실 수 있고, 이 지역을 모르는 분이라도 우선 남부정류장 근처에서 길을 찾으시면 쉽게 찾으실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모명재 찾아오시는 길 보기

모명재는 도심에 위치한 문화재로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실제로 가는 길에는 패스트푸드점, 커피전문점 등 다양한 상점들이 있어서 음식도 먹고 수다도 떨면서 가볍게 나와서 찾을 수 있는 편리함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다음(daum) 로드뷰

남부정류장에서 모명재 방향으로 찾아갈 수 있는 길은 두 군데가 있습니다 남부정류장네거리에서 무열대 방향으로 약 30m정도 이동하시면 우회전할 수 있는 골목이 있구요. 남부정류장네거리에서 시지방면으로 수성대학교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진입하는 도로는 다소 헷갈릴 수도 있으니 오실 분들은 사진을 잘 보셨다가 찾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달구벌대로에서 들어가는 진입로로 들어오시면 모명재로 가는 표지판이 있는 길이 있고 그곳을 따라 가시면 다시 갈림길 하나가 나오고 그 갈림길에서는 표지판이 가르키는 방향에 바로 모명재의 모습이 보입니다. 찾아오시는 길을 자세히 설명하느라 멀어보이지만 진입로에서 5분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랍니다.

이제 갓 새단장을 마친 모명재는 주변도 깨끗하게 단장을 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대구를 방문하는 중화권 관광객이 많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대구를 찾는 관광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수성구에도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잇는 의미있는 관광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모명재 직전에 위치한 명정각입니다. 명정각은 두사충의 7대손인 두한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정려를 내린 것입니다. 정려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을 말합니다. 두한필은 두사충의 7대손이고 사후에 이렇게 정려가 내려왔고 종3품 관직인 통훈대부규장각직각을 증직하였습니다. 두한필은 어릴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였고, 나중에 조정에까지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고 하니 모명재에서 두사충의 흔적과 함께 같이 살펴보기에 그 또한 역사적인 의의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두사충의 재실인 모명재 바로 앞에 명정각이 있습니다.

명정각을 지나면 바로 모명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갓 새단장을 마치고 깨끗하게 보수가 된 모습을 볼 수 있네요. 개인적으로 문화재는 너무 새것처럼 보이면 다소 위화감이 들기도 하는데 몇 년 만 지나도 세월의 흔적이 쌓이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새단장을 하며 주변까지 정비를 해둔 상태라서 앞으로 더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보시는 모습은 모명재의 대문입니다. 대문에는 ‘만동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요. 만동문이라는 명칭은 '백천유수필지동'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만절필동'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따왔다고도 하는데 백천유수필지동은 모든 물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의미이고 만절필동이라는 말은 황하(黃河)가 여러 번 꺾여 흘러가도 마침내 동쪽 황해(黃海)로 흘러들어간다는 뜻으로, 곡절이 있으나 마침내 본 뜻대로 나간다는 말이며 그 두가지 모두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모명재라는 이름과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의 만동문이라는 명칭은 두사충이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대문을 넘으며...
처음 마주하는 모명재의 모습은 아담한 전통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명재는 네모 반듯한 대지에 남향으로 배치되었고 그 규모는 좌우로 약 10여미터 정도로 크지 않으나 마루에 걸려있는 다양한 편액과 기둥에 붙은 주련이 전통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모명재는 정면4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 기와집이며 5개의 대청기둥에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가 걸려 있습니다. 이렇게 시귀나 글귀가 붙어있는 기둥을 주련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이순신장군과의 인연이 참 인상깊었는데요. 대구에서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였고 당시 조선의 입장에서도 외국인이었던 두사충이 어떻게 이순신장군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모명재의 기둥에 붙은 주련의 시귀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순서대로 살펴보면 되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오른쪽의 봉정두복야라는 주련의 왼쪽에 작게 충무공이순신이라고 적힌 글자가 있습니다.
복야는 두사충의 당시 벼슬로, 두복야가 두사충을 일컷는 호칭이 되겠습니다. 이 시귀는 두사충과 이순신장군과의 교분이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케하는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선의 입장에서 이방인일 수도 있었던 두사충이 이순신장군과의 국적을 넘어선 교우가 있었고 모명재가 그런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니 주변의 경물들이 새삼스럽게 다시 보이는 듯 합니다.

모명재안에는 주련과 함께 다양한 편액들을 볼 수 있습니다. 입구에서 보았던 ‘만동문’이라는 편액의 의미만큼이나 각각의 편액들도 다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왼쪽 방의 ‘경모당(敬慕堂)’은 후손들이 두사충을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오른쪽 방의 ‘숭정유루(崇禎遺樓)’는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숭정이 남긴 누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대청에 붙은 ‘형봉재(兄峰齋)’는 형제봉에 위치한 재실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이락헌(二樂軒)’은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당당한 삶을 누리는 곳이란 뜻이 있다고 합니다. 거연천석(居然泉石)은 자연에서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모명재의 앞뜰에 있는 비석은 이순신 장군의 7대손인 삼도수군통제사(경상,전라,충청도) 이인수장군께서 두사충 장군을 위해 지은 비문이 새겨진 비석입니다. 본래 두사충의 묘소앞에 있는 비문이었으나 후손들이 이를 별도로 다시 새겨 모명재 앞뜰에 신도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의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 죽은 이의 사적(事蹟)을 기리는 비석을 말합니다. 이순신과 두사충의 친밀한 관계가 후손들에게까지 접촉을 하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명나라에서 가져온 청석으로 다듬었다는 문인상

2.최근에 세워진 공적비, 뒷면에는 새겨진 글귀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깊은 샘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는다고 용비어천가에서 노래했듯이 여기 훌륭한 조상의 뜻과 얼을 이어 받들어...

이제 모명재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두사충과 두한필의 묘소로 가는 길입니다.

최근 정비를 마치며 두사충의 묘소로 가는 길은 보는 것과 같이 안내가 되고 있습니다.

두사충의 묘소로 모명선생두공지묘 라고 쓰인 비석이 있는 곳입니다. 두한필의 묘로부터 오른쪽으로 형제봉 방향 20m 떨어진 곳엔 위치하고 있습니다. 장군상 2개와 조각상 사이로 봉분이 보이는데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봉문과 달리 중국 색채가 묻어 있습니다.

비석은 2개로 과거에 만들어진 비석과 비교적 현대에 새로 세워진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엔 신도비(神道碑)라 씌어 있는데, 모명재 앞뜰에서 보았던 신도비처럼 두사충의 사적일 기리는 비석입니다.

모명재에서 좀 더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묘소가 두한필의 묘입니다. 모명재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정면에 보이기 때문에 여기가 두사충의 묘소가 아닌가 헷갈렸었습니다. 묘비에 새겨진 글씨는 증통훈대부규장각직각두공지묘입니다. 통훈대부는 정삼품 당하관[堂下官]의 품계를 말합니다.

새단장을 마쳤다는 소식에 찾아 본 모명재는 그 모습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야기는 이순신 장군의 흔적, 두사충의 일생, 대구에 남은 여러 유래들까지 접하면서 옛날부터 이어진 중국과의 인연, 그리고 조선시대의 모습을 엿본 느낌이랄까 약간은 들뜬 마음으로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모명재에서 영남제일관-고모역일대 10.87km에 이르는 거리가 도심속 명품길로서 '모명재길'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수성구민과 대구시민을 위한 도심속 트레킹코스이자,
역사가 함께하는 이야기 코스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게 됩니다.
벌써부터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 담당부서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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