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vaScript 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일부 콘텐츠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모명재를 만나다 - 조선시대 귀화한 명나라 장수 두사충과 그를 기리기 위한 재실 모명재, 한국의 역사가 된 400년전 역사 속 두사충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모명재를 알다

  • 글씨크기확대
  • 글자크기기본
  • 글씨크기축소
  • 인쇄

모명재 대문 위에 ‘만동문(萬東門)’이라는 하늘 색 바탕에 흰글씨가 보입니다. 이 액자를 편액(扁額)이라고 하는데요, 편액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이나 문 위에 거는 액자를 말하며 흔히 현판(懸板)이라고도 합니다. 모명재 안에는 다양한 편액들이 걸려 있습니다. 대문에 달려있는 만동문은 ‘백천유수 필지동(百川流水必之東)’라는 말에서 따온 것인데 모든 하천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말로 ‘그 근본을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명을 그리워하여 호를 ‘모명’이라 바꾼 두사충, 그를 모시기 위해 지어진 ‘모명재’, 그리고 근본을 잊지 않겠다는 대문 위의 편액 ‘만동문’, 모두 ‘그리움’이라는 하나의 맥락에서부터 점철(點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명재는 1966년 노후로 인하여 중수가 있었던 건물이지만 그 규모와 구조는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20세기 초, 대구지역 재실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재실은 네모반듯한 대지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에 좌우 1칸 온돌방, 중앙 대청 2칸, 전면 툇마루, ‘一’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구(架構, 목조건축 짜임새 전체를 일컫는 말)는 무고주(無高柱, 외부 기둥 외에 내부 기둥이 없는 것) 5량가(도리개수를 말함)의 견실한 구조로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운데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설치하고, 각 방마다 다른 편액이 걸려있는데요, 왼쪽 방의 ‘경모당(敬慕堂)’은 후손들이 두사충(모명)을 공경한다는 뜻이 담겨있고, 오른쪽 방의 ‘숭정유루(崇禎遺樓)’는 숭정이 남긴 누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숭정(崇禎)’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를 말합니다.
대청에 붙은 ‘형봉재(兄峰齋)’는 두사충의 유언에 따라 ‘형제봉’에 묘를 썼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락헌(二樂軒)’에서 ‘이락(二樂)’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두번째 즐거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락헌’은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당당한 삶을 누리는 집이란 뜻이지요. 거연천석(居然泉石)은 자연에서 편안하게 사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모명재 편액에는 후손들이 지향해야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모명재 기둥을 한 번 보세요.기둥에 붙은 시를 ‘주련(柱聯)’이라고 하는데 천천히 한 번 읽어볼까요?

‘복야’는 당시 두사충의 벼슬 이름으로 이 시는 이순신이 두사충에게 쓴 시입니다. 시에서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데요, 모명재 오른쪽으로 큰 비석이 있는데 이 비석은 두사충의 묘소 앞 비문을 다시 새겨 모명재 뜰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습니다. 신도비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오는 길을 표시하는 비석을 말하는 것인데, 바로 이 비문을 이순신 장군의 7대손인 삼도수군통제사 이인수가 지어주었어요. 나라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의 아름다운 교우(交友)가 세대 간의 우정인 세교(世交)로 이어진 흔적이라 할 수 있지요.

모명재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5분여 정도만 올라가면 두사충이 잠들어 있는 묘가 나옵니다. 두 번의 전쟁을 치른 장수답게 늠름한 ‘무인석’과 작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문인석’이 묘 양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묘지목으로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데요, 배롱나무는 꽃이 백일동안 피고 진다고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립니다.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는 벗을 그리워하다’로 고인을 먼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묘지에 잘 어울리는 나무입니다. 또한 나무껍질이 얇아 속이 비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삿된 생각을 하지 않고 청렴하게 살겠다는 선비들의 삶을 상징한다고 하여 향교나 서원에 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보는 배롱나무가 더욱 아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배롱나무는 원래 중국이 원산지에요. 비록 그는 이 땅에 흙이 되었지만 중국에 뿌리를 둔 배롱나무가 그를 한껏 끌어안으며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두사충 묘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그의 7대손인 두한필(杜漢弼)의 묘가 나타납니다. 두한필은 두사충의 7대손으로 조정에서 ‘명정각(命旌閣)’이라는 ‘정려(旌閭)’를 내렸을 정도로 부모에 대한 효행이 지극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두한필의 묘에는 무인석이 없고 ‘문인석’과 ‘배롱나무’가 그의 잠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 담당부서문화체육과
  • 담당자정재옥
  • 연락처053-666-2172
페이지 만족도 조사
서비스향상을 위해 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페이지 내용에 대한 만족도와 의견을 남겨주세요.
내용